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비복스/사건 사고 (문단 편집) == [[이하늘]]의 비난 == [[http://i.imgur.com/9sTxdMd.png|2007년 2월 2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어느 여자 스타의 일생' 편 캡쳐 요약.]][* 이 방송은 2007년 1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니(가수)|유니]]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관련되어 나왔다. 베이비복스와 유니 둘 다 지독한 안티와 악플에 시달렸다는 점이 같다.] 7집 타이틀곡인 'Xcstasy'는 [[힙합]]계에선 신적으로 추앙 받던 [[2Pac]]의 죽기 전 감옥에서 힘든 심경을 담은 미공개 곡을 합법적으로 돈 주고 사서 샘플링했으며, 그 중 한 멤버와 대화를 주고받는 식으로 가사를 붙인 곡이다. 그런데 [[DJ DOC]]의 [[이하늘]]이 [[이하늘/사건사고 및 논란#베이비복스와의 갈등과 도 넘은 발언|이 샘플링 곡]]을 두고 당시 자신이 출연하던 [[엠넷]]의 힙합 프로그램 '힙합 더 바이브'에서 '2PAC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베이비복스는 빠따 좀 맞자'[* 빠따 좀 맞자는 표현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이하늘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었다. 반대로 뭔가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국밥 한 그릇 드시고'라는 표현을 썼다.]라 언급했고, 이 발언이 스포츠 신문을 통해 기사화되어 당시 7집 타이틀곡 엑스터시의 작업 및 랩 피처링을 맡았던 플로스 피(Floss P)의 귀에 들어가면서 사태가 커지게 된다. 플로스 피는 'DJ DOC도 [[미국]] 랩을 따라하는데 남의 것을 아니라 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고, '''이하늘이 이에 대한 반박글을 쓰면서 문제의 '[[미아동|미아리]][* 미아리는 원래 마을 이름인데, 아시다시피 미아리에 한때 전국 최대 규모의 [[집창촌]]이 존재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30대 이상 장년층들은 미아리라고 하면 [[성매매]] 업소의 대명사로 떠오르기도 한다.] 복스', 'SEX 가수', '썅년' 등의 폭언을 쓰게 된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이하늘의 잘못이겠지만, 이하늘이 문제의 발언 후 잠수를 타고 있는 동안 해당 단어를 계속 되새김질하는가 하면, 몇몇 연예 언론들은 진작 7집 활동 초반에 마무리된 표절 해프닝[* 2PAC의 어머니가 주체가 된 아마루 레코드에서 우리의 허락 없이 곡을 갖다 썼다며 법적 대응을 운운했지만 2PAC의 곡들은 저작권이 여기저기 갈라져 있는 상태였고, 엑스터시는 정당하게 저작권을 행사하여 만든 곡이었다.]을 확대 해석하여 베이비복스에게 표절 가수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심지어 소속사인 DR 뮤직마저 이하늘과 싸우는 데 모든 신경을 기울인 나머지 저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대처하지 않았고,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심은진]]이 직접 해명해야 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분명 자신들을 둘러싼 싸움인데 아무도 자신들을 배려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멤버들의 멘탈은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이하늘은 [[일본 요리|일식]]집에서 공개 회견을 가져 베이비복스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건 나와 DR뮤직의 싸움이다'라는 뜻을 분명히 한 데다 기자회견 이후 돌연 입장을 바꿔 베이비복스에게 사과할 뜻이 없다며, 그런 표현 사실 니들한테 잘 어울린다며 끝까지 적대감을 보인다. 결국 DR뮤직 측은 이하늘을 [[너 고소|고소]]하여 승소했지만, 베이비복스 멤버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 기사화되지 않았다. 만약 기사화됐다면 '미아리복스 파문, 이하늘 패소' 같은 타이틀을 뽑아서 같은 단어로 또 되새김질을 했을 것이 뻔하니. 1세대 아이돌의 황혼기였던 이 시기 더블 타이틀곡이었던 'Xcstasy'와 'Play Remix' 부진에 이런 사태까지 겹쳐지면서 베이비복스의 7집 활동은 끝이 좋지 않게 막을 내렸고, 소속사와의 계약 기간 만료 후 재계약 논의도 없이 그냥 각자 갈 길을 갔다. 솔직히 저런 상황에서 누가 재계약을 하겠는가. 대놓고 공식 해체는 아니었지만, 활동 내내 시달렸던 안티 공격부터 시작해 뜬금포 [[간미연]]이 [[문희준]]과 열애설이 나는 바람에 무개념한 문희준의 팬들로부터 살해 협박 및 각종 테러를 당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은 데다가[* 당시에는 문희준도 [[무뇌충]]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당하던 시기였으니 이 머저리 같은 빠순이들이 확실한 자충수를 뒀고 문희준도 테러를 당했다.] 2016년 기준으로는 그저 그렇겠지만 섹시 컨셉 푸쉬와 이하늘 사건, 소속사 문제 등을 겪으면서 회의감을 느낀 멤버들이 심은진의 탈퇴를 시작으로 뒤를 이어 계약 기간이 끝난 사람부터 나간 것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해체 후 [[윤은혜]]가 잘 나갔고 나머지 멤버들도 미약하게나마 연예 활동을 계속하니까 망정이지, 베이비복스 자체만 놓고 보면 이하늘의 폭언 한 마디가 5명 인생에 많은 악영향을 끼친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이하늘은 미아리복스 발언은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투팍의 노래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그를 2번 죽였다'라는 발언은 사과할 의향이 없음을 밝혔다. 사건 몇 개월 후 발매된 본인들의 새 앨범에 '베이비복스 디스곡'을 넣으려고 했다고 홍보하거나, 본인들 콘서트에 '미복 데려와서 빨간 조명이라도 틀 걸 그랬다'며 뒤끝을 보였다. [[2Pac]]이 힙합 음악계어서 전설적인 인물인 것을 감안해도 절대 이하늘의 발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왜냐면 이하늘 자신은 힙합에 대한 자부심은 그렇게 높으면서 한 예능에서 그룹 [[백두산(밴드)|백두산]]의 [[유현상]]과 부활의 [[김태원(음악인)|김태원]]이 있는 앞에서 '락 음악의 최고봉은 [[문희준]]이다'라며 다른 장르는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이건 당시 락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문희준]]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얘기였지만, 문제는 자기 자신은 힙합 자부심에 후배 가수에게 단순 악플과는 비교가 안 될 더한 짓을 해놓고 이중적 행태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해당 발언은 아무리 힙합계의 전설인 투팍의 음원을 샘플링했어도 지나친 발언이었다. 당시 멤버들의 나이대나 아이돌 가수로 살아왔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하늘이 신중하게 발언을 했어야 한다. 또한 당시 DR 뮤직의 대처와 스포츠 신문으로 대표되는 막장 기레기들의 행각도 베이비복스의 해체에 큰 지분을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이하늘은 베이비복스 멤버들에게 가수로서의 명예훼손 이전에 여자로서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줬다. 그리고 이하늘은 결혼 발표하면서도 계속 까이지만, 베이비복스에게 욕설한 것은 잘못 없다는 뉘양스를 풍기기도 했다. 이 사건 당시 인터넷에서 이하늘을 지지하는 여론도 많았다. 여성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 각종 성적 비하[* 가해자는 남성, 여성 가리지 않았다.], 모욕, 무시를 일삼는 일들이 지금보다도 많았던 시절이며, 또한 지금보다 아이돌의 이미지가 더 나빠서 각 음악 장르의 매니아들의 [[허세]] 섞인 [[부심(은어)|부심]], [[스노비즘]]이 더 컸던 시절이기도 하다.[* 아이돌 음악 때문에 한국 음악계가 망한다는 둥, TV에서 들을 음악이 안 나온다는 둥 하는 레퍼토리가 흔하던 시절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도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편이지만, 당시까지는 철 없는 마초적 동경심에 빠져 이하늘을 멋진 형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기도 했다. 다만 이하늘 혼자 힘으로 베이비복스 5명의 인생을 말아먹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여자 아이돌 팀이 정규 7집에 스페셜까지 8개 앨범을 냈으면 꽤 오래 존속했고, 2003년을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많은 베이비복스 팬들은 그때까지 괜찮았으며, 7집도 잘 했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핑클, S.E.S. 역시 비슷한 시기 사라질 때는 정말 조용히 사라졌다. 이하늘에게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맞지만 냉정하게 보면 당시 핑클, S.E.S., 베이비복스 세 팀 다 이미지 소진이 거의 다 된 상황이었으며, 특히 앨범도 가장 많이 내고 2006년 가장 마지막까지 활동했던 베이비복스는 이하늘 사건이 없었어도 이미지 소진이 가장 심했다.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 할 만한 컨셉은 다 했던 상황이며,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힙합으로 컴백한 것도 이미지 소진이 심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기도 하다. 또한 더 인기가 좋았고 각기 2002년, 2005년 일찍 해체했던 S.E.S.나 핑클의 멤버들 역시 홀로 서기는 다들 힘겨웠기 때문에, 베복 팬들에게 이하늘이 가장 분노를 일으킬 만한 대상은 맞지만 해체나 힘겨운 홀로 서기가 마냥 이하늘만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단 서두에 있듯이 당시가 1세대 아이돌의 황혼기였기 때문인 게 가장 큰 이유다. 베복의 7집이 발매된 2004년은 아이돌이 저물고 [[휘성]], [[박효신]]으로부터 본격적인 소몰이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하늘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한편, 사건의 당사자였던 이하늘은 이 사건 이후로도 자잘한 사고를 일으키다가 [[DJ DOC|자신이 소속된 그룹]]의 전 멤버였던 [[박정환#s-4|박정환]]을 비하한 사건과 [[김창열]]과의 갈등으로 또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